← 작품 소개

웹 무료 미리보기 · 7 / 20화

천재는 사기로 키운다

1부 · 수업료는 선불

다음 날 아침.

천재 둘을 거뒀다.

곳간엔 좁쌀 한 톨 없었다.

이게 막판무관의 현실이다.

천하제일 검신이 차린 무관인데, 사부라는 작자가 아침부터 쌀독 바닥을 긁고 있다. 손가락에 닿는 건 먼지뿐이었다. 백 년 묵은 영약을 단지째 굴리던 졸부 가문 하나를 무너뜨린 게 며칠 전인데, 정작 내 손엔 동전 몇 닢이 전부였다.

남의 곳간은 잘도 털면서 제 곳간은 못 채운다.

사기꾼의 오랜 직업병이다.

"사부, 배고파요."

"사부, 쌀 떨어졌는데요."

"끗."

셋이 동시에 나를 봤다. 나찬, 하린, 그리고 너구리.

나찬은 팔짱을 낀 채 턱을 들었고 하린은 벽에 기대 곁눈질로, 끗발이는 빈 밥그릇을 앞발로 탁탁 두드리며. 일류와 절정과 영물이, 죄다 굶주린 눈으로 열여덟짜리 사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회귀 전엔 천하가 내 한 칼에 판돈을 걸었다.

지금은 천재 둘과 너구리 한 마리가 내 한 끼에 판돈을 건다.

세상 참 공평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돈 벌러 가자."

돈 버는 법은 하나뿐이다.

나는 사기꾼이니까.

도박촌 한복판, 가장 큰 노름판. 천산루(天山樓). 회귀하자마자 내가 끗발이를 딴 그 도박장이다. 그날 멱살을 잡혔던 그 자리에, 오늘은 제자 둘을 끌고 들어갔다.

문턱을 넘자 익숙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름때 전 등롱, 식은 술, 땀, 그리고 돈 냄새. 골패 부딪는 소리가 빗방울처럼 끊임없이 떨어졌다. 어디선가 누가 가산을 날리고 어디선가 누가 남의 가산을 줍는다. 이 바닥의 소리는 늘 똑같다.

나는 셋을 데리고 들어갔다.

"잘 봐. 이게 진짜 수업이다."

"무공 수업 아니고요?"

나찬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영약 그릇으로 자란 놈은, 여태 세상에 무공보다 귀한 게 있다는 걸 모른다.

"무공? 무공으로 밥 못 벌어. 밥은 머리로 버는 거야."

나는 골패판에 앉았다. 판돈은 무관 살 때 쓰고 남은 동전 몇 닢. 호구가 앉을 자리에, 호구인 척 앉았다.

엉덩이를 붙이는 순간, 자세부터 호구로 만들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동전을 만지작거리고 패를 받을 때마다 침을 꿀꺽 삼키는 시늉. 솜털 난 애송이가 코 묻은 돈 들고 어른들 판에 잘못 끼어든 그림. 완벽했다.

물주가 비릿하게 웃었다. 어린놈이 코 묻은 돈 들고 왔다고 생각하는 얼굴.

호구는 늘, 자기가 호구를 봤다고 믿을 때 호구가 된다.

패안을 열 필요도 없었다.

물주의 손이 너무 정직하게 거짓말을 했다. 패를 돌릴 때 새끼손가락이 한 박자 늦고 좋은 패를 깔 땐 무릎이 살짝 들썩였다. 소매, 무릎, 눈동자. 사기꾼이 사기꾼을 보는 건, 거울 보는 거랑 같다.

나는 거울 앞에 앉은 거였다. 다만 저쪽은 그걸 몰랐다.

천천히 잃어 줬다. 동전 몇 닢을, 아까운 척 흘려 줬다. 호구는 따게 해 줘야 더 크게 건다. 물주의 웃음이 점점 헤퍼졌다. 이때다 싶었는지 판돈을 키우기 시작했다.

묻고 더블로 가자고 부추기는 게 저쪽이었다.

낚싯바늘을 제 입으로 무는 호구였다.

한 시진 뒤.

나는 물주의 판돈을 통째로 쓸어 담았다.

"이, 이 자식 뭐야! 사기 친 거 아냐?"

물주가 벌떡 일어섰다. 얼굴이 시뻘겠다.

"사기? 형씨가 친 사기를 내가 도로 친 건데. 그걸 사기라고 하면 섭하지."

나는 동전 자루를 묵직하게 들어 올렸다. 짤랑, 하는 소리가 제법 무거웠다.

"수업료는 선불.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나찬과 하린이 입을 벌리고 봤다.

검 한 번 안 휘두르고 한 시진 만에 무관 반년 치 식비를 벌었다. 영약도, 비급도, 기합도 없이. 그냥 패를 읽고 호구의 욕심을 읽었을 뿐이다.

"……이게 무공보다 세네요."

나찬이 중얼거렸다.

가문이 백 년 묵은 영약을 들이부어 만든 일류 천재가, 동전 자루 하나에 그런 표정을 지었다. 평생 휘두르는 법만 배운 놈이, 처음으로 휘두르지 않고 이기는 걸 본 거다.

하린은 말이 없었다. 대신 물주의 손을, 그다음 내 손을 번갈아 봤다. 절정의 눈이 뭔가를 읽으려 애쓰는 게 보였다. 칼만 알던 애가, 칼보다 빠른 손이 있다는 걸 처음 본 얼굴.

"이제 알았냐."

나는 자루를 어깨에 멨다.

"무공은 한 사람을 이기고, 머리는 판 전체를 이긴다. 한 놈만 베면 영웅이지만, 판을 통째로 먹으면 그게 딜러다. 영웅은 혼자 죽고, 딜러는 다음 판을 깐다."

둘은 무슨 소린지 몰랐을 거다. 알 필요도 없었다. 언젠가 제 손으로 깨치게 될 테니까. 가르치는 건 떠먹이는 거고 떠먹인 깨달음은 영약과 똑같이 가짜로 산 거다.

문제는, 천재 둘을 한집에 두는 게 사기보다 어렵다는 거다.

나찬은 가문에서 도구로 자랐다. 사람을 위아래로 가른다. 위에 설 놈과 밟을 놈으로. 그래서 하린을 "주워 온 폐품"이라 부른다.

하린은 평생 매를 맞고 자랐다. 사람을 안 믿는다. 믿었다가 맞은 기억밖에 없으니까. 나찬이 입만 열면 검부터 잡는다.

밥상머리가 전쟁터다.

"야, 폐품. 그 반찬 내 거야."

"한 번만 더 폐품이라 하면, 젓가락이 네 손등에 꽂힌다."

하린의 목소리는 낮았다. 으름장이 아니라 통보였다. 절정에 든 손이 젓가락을 거꾸로 쥐었다.

"해 봐. 어제는 방심해서 당한 거야. 이번엔 안 져."

나찬이 비웃었다. 제 영약 내공을 믿는 얼굴이었다.

"……손 묶였을 때도 졌으면서."

채앵, 하고 젓가락 두 짝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불꽃이 튀었다. 밥상이 두 쪽 났다. 국그릇이 엎어지고 어렵게 산 쌀밥이 마당에 쏟아졌다.

"끗!" 끗발이가 그 틈에 반찬을 물고 도망쳤다. 손해 보는 판엔 이 녀석이 제일 빠르다.

나는 부서진 밥상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진짜 어려운 부분이다.

능력은 키웠다. 나찬은 일류, 하린은 절정. 회귀 전 무림이 십 년 걸려 못 만든 천재 둘이, 며칠 만에 여기 있다.

근데 사람은, 아직 어제 그 자리다.

[패안(牌眼)] 패주: 나찬 — 능력 일류 / 인격: 독식·오만 (어제와 동일) 패주: 하린 — 능력 절정 / 인격: 불신·경계 (어제와 동일) 진단: 능력 곡선은 올랐다. 인격 곡선은 0. 경고: 천재는 혼자 강해지면, 혼자 망한다.

회귀 전, 내가 놓친 게 이거다.

나는 늘 검만 봤다. 강하게만 키우면 되는 줄 알았다. 강한 패 여러 장을 손에 쥐면 이기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 후배들은 강해졌고, 혈겁 때는 제 자리를 버리고 내 주위로 모였다. 등을 받치고 무기를 함께 들면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검신 한 명이라고 믿었다.

그들이 내 숨을 한 번씩 남길 때마다, 뒤의 사람들을 지킬 자리는 비었다.

그게 내가 천하를 잃은 진짜 이유다.

이번엔 다르게 가야 한다.

저 둘을, 서로의 패로 만들어야 한다. 못 죽일 만큼 강하게, 동시에 떨어지면 굶을 만큼 엮어서.

"내일."

나는 부서진 밥상을 치우며 말했다. 쏟아진 밥알을 끗발이가 다시 슬금슬금 주워 먹고 있었다.

"둘이 한 조로, 노름판 하나 털어 와. 따로 놀면 한 푼도 못 가져. 둘이 호흡 맞춰야만 먹을 수 있는 판으로 짜 줄 테니까."

"쟤랑요?"

둘의 목소리가 겹쳤다. 나찬과 하린이 동시에 인상을 썼다. 그러고는 서로 같은 말 한 게 또 짜증 나서 인상을 썼다.

"그래, 너희 둘. 싫으면 굶든가."

천재를 키우는 건, 검을 쥐여 주는 게 아니다.

옆에 또 다른 천재를 앉히고 둘이 서로를 못 죽이게, 서로가 필요하게 판을 짜는 거다.

귀찮고 더디고 밥상이나 부서지는 일.

근데 이게, 세상을 살리는 일이더라.

너무 늦게 배웠지만.

한 번 무너뜨려 보고 나서야 배운다. 노름꾼은 다 그렇게 늙는다.

그날 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점잖은 소리였다.

횃불도, 고함도 없이. 딱, 딱, 딱. 세 번. 격식을 차린 두드림이었다. 그래서 더 거슬렸다. 이 바닥에서 격식을 차린다는 건, 칼을 옷 안에 숨겼다는 뜻이니까.

문을 여니, 비단 장포를 입은 노인이 정중히 포권했다. 뒤에 무사 몇이 조용히 서 있었다. 횃불 없이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은 자들. 가슴에 새겨진 문장 — 나가(羅家)의 것.

등 뒤에서 나찬의 숨이 멎는 게 느껴졌다.

"막판무관 관주를 뵙습니다."

노인이 미소 지었다. 주름까지 정갈하게 접힌, 잘 손질된 미소였다.

"소가주, 나찬 공자를 모시러 왔습니다. 나가의 귀한 자제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계실 순 없지요."

말은 비단이었다. 속은 올가미였고.

나찬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굳었다.

며칠 전 추출대에 누워 제 내공이 뽑혀 나가던 그 밤이, 저 정중한 미소 한 장에 도로 그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딜에 앉힌 천재: 2명 (나찬·하린). 인격 곡선: 아직 0. 곳간: 채움(노름). 새 위기: 나가(羅家)가 나찬을 도로 데려가려 한다.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