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의 답은 간단하다.
목격자는 지운다. 비밀은 피로 막는다. 천하제일의 길에 거치적거리는 패는, 판 위에서 치운다.
묵단을 앞에 두고 처음 떠올린 답이었다.
손목의 힘을 풀어 버린 그 한 올의 길만 바꾸면 됐다. 손목에서 목으로. 묵단은 무릎 꿇은 채 죽고 검신은 다시 어둠 속으로 숨고 제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잠들 거다. 깔끔하게.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검으로 눈앞의 매듭부터 끊으려는 버릇은 전생에서 가져왔다. 손이 먼저 안다. 머리가 망설이는 사이, 손끝은 이미 그 한 치를 재고 있었다.
그 길의 끝이, 시체의 산이었고.
손버릇이라는 건 무섭다. 천하를 한 번 잃고 돌아와서도, 손은 옛 매듭을 풀려 든다. 나는 그 손을, 일부러 멈춰 세웠다.
그래서 나는, 검을 쥐는 대신 — 끗발이를 묵단 앞에 던졌다.
"끗발아. 이 사람, 거짓말하나 봐 줘."
내 어깨에서 떨던 너구리가, 묵단의 발치로 툭 떨어졌다. 녀석이 조심스레 코를 들었다. 무릎 꿇은 살수의 냄새를 맡았다. 검을 든 자가 아니라, 검을 놓친 자의 냄새를.
그러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끗?"
거짓이 없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맡았다는 소리. 영약에서 나던 그 냄새의 끝자락을, 이 사내한테서도 맡은 거다.
나는 패안으로 묵단을 다시 읽었다.
이번엔, 검을 막느라 못 봤던 깊은 곳까지. 손목의 힘을 풀 때는 그의 검만 봤다. 이제, 그 검을 쥔 사람을 봤다.
[패안(牌眼)] 패주: 묵단 · 회수자 보이는 패: 검신을 확인하러 온 살수 숨은 패: 빚 — 윗선에 묶인 목줄 약점: 그도, '회수당하는' 처지다 가진 것: 천재 농사의 길, 그 종착지를 안다
역시.
회수자도, 누군가의 호구다.
묵단은 자유로운 살수가 아니었다. 윗선에 목줄이 잡혀, 천재를 회수하며 제 빚을 갚는 처지. 사람을 거두고 사람을 처리하면서 정작 제 인생은 한 줄도 못 가진 자. 그도 결국, 판에 끌려 나온 패였다.
방금 나를 올려다보던 그 절박한 눈의 정체가, 이제 보였다.
저건 회수당하는 자의 눈이다. 다음 차례가 자기라는 걸 아는 자의 눈.
나는 묵단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 꿇은 그와 눈높이를 맞췄다. 죽이러 온 자 앞에, 솜털 난 애송이가 쪼그려 앉은 그림이었다.
"형씨."
나는 아주 능청스럽게 운을 뗐다.
나는 묵단에게만 들리게 목소리를 낮췄다. 제자들은 뒤로 물러선 자리에서 그의 검을 경계하고 있었다.
"날 검신이라고 윗선에 보고하면, 형씨한테 뭐가 떨어져?"
묵단이 흠칫했다. 그 생각은 안 해 본 모양이었다. 검신을 찾는 데만 골몰해서, 찾고 난 다음은 못 그려 본 거다. 호구들이 늘 그렇다. 패 잡는 데만 정신 팔려, 그 패가 자기 목줄인 줄은 모른다.
"포상? 아니지."
나는 손가락을 하나 폈다.
"검신이라 불릴 고수가 나타난 건 윗선 계획에 가장 큰 변수야. 천재를 그러모아 '하나'를 만들고 있는데 천하제일이 한 명 더 끼어든 거잖아. 그 변수를 처음 발견한 게 형씨고."
묵단의 눈이 흔들렸다.
"윗선이 형씨를 칭찬할까? 아니면 '검신을 봤는데 못 잡은 무능한 회수자'라고 형씨부터 처리할까? 비밀을 아는 패는 비밀보다 먼저 치워지거든. 형씨도 그 일 하잖아.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묵단의 얼굴이 굳었다. 핏기가 천천히 가셨다.
"……내 말이 맞지? 형씨도 알잖아. 회수자가 회수당하는 거, 어떤 기분일까."
묵단을 처음 만났을 때도, 같은 뜻으로 흘리듯 던졌던 말이었다.
그때도 그의 표정은 흔들렸다. 헛보고를 올렸다가 자신이 회수당할 수 있다는 말에. 이번엔, 검신을 확인하고도 살아 돌아갈 길을 찾아야 했다. 제 손목의 힘을 풀어 버린 한 올을 본 다음이라, 그 말이 더 무거웠다.
"……그럼 어쩌라는 거냐. 검신을 봤는데."
목소리가 갈라졌다.
"못 봤다고 해."
나는 씩 웃었다. 천수의 웃음.
"형씨가 본 건 천재 셋 키우는 애송이 노름꾼이야. 운 좋게 회수자 손목을 한 번 풀리게 만든, 잔재주 좀 부리는 사기꾼. 검신은 못 봤어. 그게 형씨한테도 안전해. 검신을 봤다고 보고하는 순간 형씨가 변수의 한복판에 서거든. 한복판에 선 패가 제일 먼저 죽는 거, 알지?"
묵단이 한참을 침묵했다.
무릎 꿇은 채로, 흙바닥을 노려보며. 머릿속에서 주판알을 굴리는 게 보였다. 죽이러 온 놈이, 살길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판이 뒤집힌 거다.
"……대신?"
드디어 미끼를 물었다.
"대신, 형씨가 아는 걸 나한테 팔아. 영약이 흐르는 길. 그 끝에 뭐가 있는지."
이게 채무 재조정이다.
죽이는 대신, 빚을 옮기는 것. 묵단을 윗선의 패에서, 내 쪽 외상 장부로 끌어오는 것. 노름판에서 빚쟁이를 동업자로 만드는 법은 하나다. 그가 윗선보다 나한테 빌린 게 많아지게 만들면 된다. 목숨부터가 그렇다. 방금 내가 안 거뒀으니까.
묵단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천재들을 전부 한곳에 모아. 영약으로 익힌 다음에."
"왜."
"하나를 만들려고."
묵단의 눈에, 짙은 공포가 어렸다.
나를 향한 게 아니었다. 제 윗선을 향한 공포였다. 검신을 코앞에 두고도, 더 무서운 게 따로 있다는 눈. 그게 나는 더 서늘했다.
"천하의 모든 재능을 그러모아서 단 하나의…… 절대적인 무언가를 만들려고. 그거 하나면 세상을 끝낼 수도, 구할 수도 있다고 믿는 자들이야."
"하나면 충분하다, 이거지."
내 입이 절로 비틀렸다.
들어 본 소리였다. 회귀 전, 사람들이 나를 두고 했던 말. 검신 하나면 충분하다고. 그 한 장이면 천하가 산다고. 다들 그렇게 믿고 마지막 판단을 내게 넘겼다. 그래서 그 한 장이 외톨이로 남았을 때, 전부 같이 죽었다.
저들은 그걸, 노리고 만들고 있는 거다. 외톨이 끗 한 장을. 천하를 통째로 건.
"하나에 다 걸면 그 하나가 꺾이는 날 다 끝나는데. ……똑똑한 양반들이 그걸 모르나 봐."
"그자들은, 그 하나가 안 꺾인다고 믿어."
묵단이 고개를 저었다.
"천하의 모든 재능을 넣을 거니까. 안 꺾일 거라고."
나도 안 꺾였다. 안 꺾여서, 혼자 살아남았다.
그가 침을 삼켰다.
"당신이 검신이든 아니든 — 그자들은, 천재를 절대 포기 안 해. 한 명이 더 늘면, 재료가 한 명 더 늘 뿐이거든. 당신 제자들도…… 이미, 그 재료 명단에 올라."
단 하나.
판돈을 한 장에 모는 자들.
회귀 전의 나와, 똑같은 신념을 가진 자들.
모두가 한 장에 거는 판은, 그 한 장이 꺾이는 순간 끝난다. 나는 그걸 천하제일이 되고 나서야, 시체의 산 위에서야 알았다. 근데 저들은, 그 한 장을 일부러 만들고 있는 거다.
그게 무엇을 만드는지, 나는 안다. 그 끝에 뭐가 오는지도.
혈겁이다.
"……고맙다, 형씨."
나는 일어섰다. 무릎의 흙을 털었다.
"오늘 본 건 잊어. 대신 가끔, 형씨가 아는 걸 흘려 줘. 그럼 형씨 빚, 내가 천천히 갚아 줄게. 사람은 배신해도, 노름빚은 안 떼먹거든."
묵단이 비척비척 일어났다.
풀렸던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나를 봤다. 죽이러 왔다가, 살아서 돌아가는 자의 얼굴로.
"……왜 안 죽이지. 죽이면 깔끔한데."
나도 앞서 떠올린 답이었다. 검신이라면 당연히 죽였을 거라는, 살수의 상식이었다.
"형씨를 죽이면, 윗선으로 이어진 정보줄도 끊기거든."
깔끔하게 한 장으로 끝내는 판이, 결국 다 엎어진다. 한 장에 모은 판돈이 한 번에 무너지듯. 나는 그 교훈에 천하를 한 번 바쳤다. 두 번은 안 한다.
"형씨 같은 회색 패 하나 살려 두는 게 나한텐 남는 장사야. 언젠가 그 패가 결정적인 자리에서 뒤집힐 거거든."
묵단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완전히 내 사람이 된 건 아니다. 하지만 윗선의 패도, 더는 아니었다. 회색 어딘가에, 그를 앉혀 뒀다. 죽인 게 아니라, 묶어 둔 거다.
끗발이가 그제야 내 어깨로 기어 올라왔다. 더는 "들킨다"고 울지 않았다. 위험이 지나갔다는 걸, 녀석도 안 거다.
언젠가, 그 회색 패가 결정적으로 뒤집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좋은 패는, 묻어 뒀다 막판에 까는 거다.
묵단 역포섭(완전한 전향이 아닌 외상 거래). 정체 비밀, 일단 봉합. 새 정보: 천하의 천재를 모아 '단 하나'를 만드는 자들 = 혈겁의 근원. 제자들도 그 '재료 명단'에 있다. 목격자를 베어 입을 막는 옛 검신의 길을 거부하고 판으로 묶어 두다. 딜에 앉힌 천재: 3명(나찬·하린·두식).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