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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무료 미리보기 · 17 / 20화

천재는 사기로 키운다

1부 · 한 수

묵단의 검이, 두식을 노렸다.

영리한 선택이었다. 셋 중 막내. 방금 각성한, 가장 불안정한 패. 묵단은 셋을 한눈에 훑고 가장 약한 고리를 짚어 냈다. 살수의 눈이었다.

이유는 뻔했다. 두식을 베어 내 반응을 보려는 거였다. 검신이라면, 제자가 죽게 두지 않을 테니까. 손이 나오면, 그게 곧 확인이다. 검신이라 불러 마땅한 고수가 여기 있다는, 천금짜리 확인.

그게 그의 미끼였다.

문제는, 그 미끼가 — 통한다는 거였다.

두식이 도를 들었다. 산만 한 거구가, 본능적으로 앞을 막으며 한 발 나섰다. 며칠 전 화경의 문턱을 본 도였다. 멈추는 칼.

하지만 묵단은 한 수 위였다.

회수자(回收人). 천재를 거두고 거스르는 자를 처리하는 게 직업인 자. 평생을 사람 목으로 빚을 갚아 온 살수. 절정의 끝, 화경의 문턱에 선 칼. 두식과 경지는 비슷해도, 그 사이엔 십수 년의 실전이 강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묵단은 두식의 도가 앞을 막는 순간 검을 비스듬히 댔다. 맞물린 날을 따라 도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두식은 더 밀지 않고 칼을 거두려 했지만, 묵단은 벌써 그 옆으로 들어왔다. 무거운 도가 몸 앞을 다시 닫기 전에 검끝이 안쪽에서 솟았다.

목을 향했다.

"두식!"

나찬이 달려들었다. 하린이 반대쪽에서 검을 뽑았다.

늦었다.

둘 다 일류와 절정. 빠르다. 하지만 묵단과 두식 사이의 거리는, 이미 검 한 자루 길이도 안 됐다. 둘이 닿기 전에, 검이 먼저 닿는다.

두식의 화경은, 아직 그릇뿐이다.

깨달음은 하나. "내 칼은 멈추는 칼." 그뿐이다. 십 년 만에 칼을 다시 잡고 벽을 넘은 지 겨우 며칠. 그런 놈이, 평생을 사람 죽여 온 살수의 노련함을 어떻게 따라가나. 경지는 따라잡아도, 칼밥 먹은 햇수는 못 따라잡는다.

검날이, 두식의 목 한 치 앞.

시간이, 늘어졌다.

내 눈엔 그게 다 보였다. 묵단의 검이 그리는 선. 두식의 늦은 방어. 나찬과 하린의 헛디딘 한 걸음.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두식의 목.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신의 눈은, 이런 순간이 늘 길다. 남들에겐 한 호흡인 게, 나에겐 한나절이다. 그게 축복인지 형벌인지, 나는 시체의 산 위에서 헷갈렸다. 죽어 가는 얼굴 하나하나가, 다 그렇게 천천히 보였으니까.

지금도 그렇다. 두식의 목에 맺힌 땀방울 하나까지, 다 보였다. 며칠 전 처음 제 칼을 멈춰 사람을 지켜 본 막내가, 오늘 그 자리에서 죽으려 하고 있었다.

선택지가, 두 장 깔렸다.

봉인을 풀지 않으면, 두식이 죽는다.

풀면, 정체가 들킨다.

회귀 전이었다면, 고민도 안 했다.

봉인이고 뭐고 검을 뽑아 묵단을 가루로 만들었겠지. 손가락 한 번에. 천하제일이니까. 나서서, 다 베어 버리고 제자를 살리고 또 영웅이 됐겠지.

근데 그게, 모두를 죽인 손버릇이었다.

내가 다 해주면, 제자들은 영영 내 그늘에서 못 나온다. 내가 너무 강하면, 나머지는 전부 내 호구가 된다. 그 끝을 나는 봤다. 시체의 산 위에서, 혼자 남은 외톨이 끗으로.

나는 이를 악물었다.

확실하지 않으면, 검을 안 뽑는다.

노름판에서 배운, 내 신조다. 확실하지 않으면 배팅 안 한다. 거기서 한 끗 틀어 평생 지킨 말.

근데 지금은—

확실하거든.

두식은, 죽는다. 확실하게. 내가 안 움직이면.

이건 모기 잡자고 벼락 부르는 판이 아니다. 제자 목숨이 검끝 한 치 앞이다. 이런 패엔, 건다.

그럼 뽑는 거다.

단, 천하제일의 검이 아니라. 들키지 않을, 딱 한 수만.

봉인의 가장 바깥, 한 꺼풀.

손가락 하나가 움직였다.

검을 뽑은 것도, 내공을 통째로 일으킨 것도 아니다. 그냥, 손끝에서 검기(劍氣) 한 올이 —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눈으로 좇을 수 없게 — 튕겨 나갔다.

검신의 한 수.

회귀 후 처음으로, 봉인이 한 꺼풀 열렸다.

가둬 둔 진력의 한구석이, 손끝으로 한 방울 새어 나왔다. 그 한 방울이, 마당의 공기를 갈랐다.

그 한 올이 묵단의 검을 비껴, 손목을 스쳤다.

채앵.

묵단의 검이, 두식의 목 한 치 앞에서 떨어졌다.

쇳소리가 마당 흙바닥에 박혔다. 그게 다였다. 비명도, 핏물도 없었다. 그냥 검 한 자루가, 주인 손을 떠나 떨어졌을 뿐.

묵단이 제 손을 봤다.

손목이 풀려 있었다. 베이지도 않았는데, 검을 못 쥐었다. 손가락이 제 말을 안 들었다. 무엇이 자기 손목을 친 건지, 그조차 못 봤다. 평생 사람 목을 따 온 살수가, 제 손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마당의 누구도 못 봤다.

나찬도, 하린도, 두식도. 그냥 묵단이 갑자기 검을 떨어뜨린 걸로 보였다. 제자 셋이, 영문도 모른 채 멈춰 섰다.

"……왜 검을 놨지?"

나찬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달려들던 기세가 갈 곳을 잃고 흩어졌다. 하린이 검을 쥔 채 눈을 좁혔다. 절정의 감각으로도,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못 읽었다. 마당의 공기가 한순간 갈렸다 다시 메워진 것만, 어렴풋이 느꼈을 뿐이다.

두식이 제 목을 더듬었다. 멀쩡했다. 손끝에 닿는 건 제 살갗뿐, 핏물 한 점 없었다. 한 치 앞에서 죽음이 비껴간 걸, 본인도 몰랐다. 그저 멈춘 검을 보며 영문 모를 얼굴로 서 있었다.

다행이었다. 못 본 게.

봉인을 한 꺼풀 연 건, 제자들한테까지 들키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제 사부가 검신이라는 걸 알면, 녀석들은 또 한 장에 기대게 된다. 내가 가장 막고 싶은 게 그거다.

단 한 사람.

당사자인 묵단만이, 제 손목을 스친 그 한 올의 정체를 — 살수의 본능으로 — 느꼈다.

[패안(牌眼)] 봉인 해제: 1단계 — '한 수' (회귀 후 최초) 목격: 묵단 1인 (당사자만 감지) 끗발이 — "끗! 들킨다!" (정체 노출 위험 — 최고조)

끗발이가 미친 듯이 울었다.

"끗! 끗! 들킨다아아!"

내 어깨 위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래, 나도 안다. 한 꺼풀이라도 열면, 위험하다. 하지만 안 열면 두식이 죽었다. 둘 중 하나는 잃어야 하는 판이었고 나는 제자를 골랐다. 사기꾼도 그쯤 셈은 한다.

묵단이, 떨어진 검을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솜털 난 열여덟의 얼굴을.

그 눈에서, '반의반'이 — '확신'으로 바뀌는 게 보였다. 보름 전 내가 흘려 둔 의심이, 방금 한 올로 못이 박힌 거다.

"……방금."

묵단의 목소리가 떨렸다. 검을 쥐던 손보다 더 심하게. 나는 그의 앞으로 다가서며 제자들에게 뒤로 물러나 있으라고 손짓했다. 묵단은 나만 들을 만큼 목소리를 낮췄다.

"방금 그건…… 검기였어. 그것도 내가 평생 본 적 없는 결이었지. 머리카락처럼 가는 검기로 상처 하나 없이 손목 힘만 풀어 버리는 검은 천하에 하나뿐이야."

그가, 무릎을 꿇었다.

쿵. 무릎이 흙바닥을 찧는 소리가, 마당에 둔하게 울렸다. 살수가, 검도 못 든 채 제 발로 주저앉았다.

도망친 게 아니다. 베인 것도 아니다.

방금 본 그 한 올의 무게에, 다리가 풀린 거다. 산을 본 개미처럼. 평생 칼을 쥐어 온 자만이, 그 한 올이 얼마나 까마득한 경지에서 떨어진 부스러기인지 안다. 부스러기 한 올에, 절정의 살수가 주저앉았다.

"검신…… 검신이 맞구나. 천하제일이, 어떻게……"

묵단이 나를 올려다봤다. 공포와, 그리고 — 알 수 없는 절박함이 섞인 눈으로.

공포는 알겠다. 검신을 봤으니까. 근데 그 절박함은, 뭐지.

마치, 죽을 자리에서 동아줄 하나를 본 사람의 눈 같았다. 검신을 만난 게, 그에게 끝이 아니라 — 처음으로 열린 다른 패일지도 모른다는. 그 눈을, 나는 안다. 회귀 직후 거울에서 내가 봤던 눈이니까.

마당이 고요했다. 등롱 불이 바람에 흔들렸다. 끗발이의 울음도 어느새 잦아들어, 내 어깨에서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이제, 이 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

가장 쉬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죽이면 된다. 비밀은 지켜진다. 한 수 더, 이번엔 손목이 아니라 목으로. 방금 그 한 올을, 한 치만 옮기면 된다. 그럼 목격자는 사라지고 검신은 다시 어둠 속으로 숨는다. 깔끔하게.

검 하나로 끝내려 들면, 지금도 그 답부터 떠올랐다.

목격자를 지우면 비밀을 지킬 수 있다. 거치적거리는 패 하나만 치우면 된다고.

눈앞의 위협부터 베어 없애면 뒤의 일도 풀릴 줄 알았다가, 시체의 산에 남았으면서.

봉인 1단계 해제 — 검신의 '한 수' 최초 공개. 목격자: 묵단 단 한 명. 묵단, 정체를 확신하고 무릎 꿇다. 갈림길: 입을 막으려면 죽이면 된다 — 그러나 그게 '검신의 답'이다. 딜에 앉힌 천재: 3명(나찬·하린·두식).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