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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무료 미리보기 · 5 / 20화

천재는 사기로 키운다

1부 · 허락

"왜 저딴 걸 거둬요?"

나찬이 팔짱을 끼고 하린을 턱짓했다.

"이류잖아요. 눈빛만 사납지. 사부, 나 같은 일류를 거뒀으면 격을 좀 맞춰야—"

"너, 며칠 전엔 짐수레에 처박혀 있던 놈 맞지?"

나찬이 입을 다물었다. 할 말이 쏙 들어간 얼굴이었다.

열아홉짜리가, 열일곱짜리를 깔보는 꼴이라니. 그리고 그 둘 다, 열여덟짜리 사부 밑이고. 이 무관은 시작부터 족보가 엉망이다. 사부가 첫 제자보다 어리고 첫째가 둘째를 폐품 취급하고 식구 중에 제일 어른스러운 게 너구리다.

웃긴 판이다. 근데 천하의 명문도 처음엔 이런 폐가에서 시작했겠지. 다들 시작은 호구였다.

하린은 마당 구석에 쇠고랑을 찬 채 앉아 있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그냥 노려봤다. 사흘째였다. 사람이 사흘을 저러고 버틴다는 건, 몸이 강해서가 아니다. 안 죽으려고 버티는 게 몸에 밴 거다.

나는 그 애 앞에 검 한 자루를 툭 던졌다.

낡은 목검이었다. 무관 살 때 마당에 굴러다니던 걸 주운 거다. 명검은 아니었다. 명검이 필요한 판도 아니었다.

"나찬이랑 한 합만 겨뤄 봐."

하린이 목검을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손목의 쇠고랑이 절그럭거렸다.

"……손 묶여 있는데."

"손목만 묶였지. 검은 들 수 있잖아."

"……안 해."

"왜."

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을 깨물고 다시 땅을 봤다. 대답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였다. 제 입으로 그 이유를 말하는 게, 매 맞는 것보다 무서운 거다.

대신 패안이 대답했다.

[패안(牌眼)] 패주: 연하린 막힌 곳: 벽이 아니라 "휘둘러도 된다는 허락" 기록: 재능을 보일 때마다 매를 맞았다. 결과: 스스로 손을 묶는 법을 익혔다. 필요한 것: 가르침(×) / 허락(○)

이 애는 못 휘두르는 게 아니다.

휘두르면 안 된다고 몸이 외웠을 뿐이다.

가르칠 게 없다. 이미 다 안다. 검신에 닿을 손이 거기 있다. 다만 그 손이, 자기 자신한테 허락을 못 받았다.

기가 막힌 일이다. 평생 비급을 못 구해 벽 앞에서 죽는 무인이 천지인데, 이 애는 그 벽을 이미 넘어 놓고도 발끝을 못 뗀다. 문을 열 열쇠를 손에 쥐고 문 앞에 주저앉은 거다. 열면 매가 날아온다고 믿어서.

비급으로도, 영약으로도 못 푼다. 이건 돈으로 살 수 있는 자물쇠가 아니다.

그러니 사기로 풀어야지. 그게 내 전공이고.

"나찬아."

내가 말했다.

"쟤 한 대 쳐."

"예?"

"목검으로. 살살 말고, 진심으로. 쟤가 막을 수 있나 보자."

나찬이 어이없어하다가, 픽 웃었다. 오만한 일류의 웃음.

제 몸으로 일류의 벽을 넘은 지 얼마 안 된 놈이다. 갓 칼맛을 본 천재는 세상이 다 우습다. 손 묶인 이류 하나쯤은, 눈 감고도 친다고 믿는 얼굴이었다.

"……다치게 하진 않을게요."

나찬이 목검을 들었다. 일류의 보법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영약으로 산 육십 년, 이제 제 피가 된 내공. 빠르고 묵직했다.

마당의 잡초가 그 기세에 눕는 게 보였다. 며칠 전엔 짐수레에 처박혀 있던 놈이라곤 믿기지 않는 한 수였다. 키우길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하린은 앉은 채였다.

손도 안 풀었다. 검도 안 들었다. 그냥 앉아 있었다.

목검이 하린의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나는 봉인을 풀 생각이 없었다. 나찬이 진짜로 내리쳐 하린이 다치면, 그건 내 판이 틀린 거다. 근데 나는 패를 읽었다. 이 애는 안 맞는다. 확실하지 않으면, 검을 안 뽑는다. 근데 이 판은 확실했다.

그리고—

채앵!

소리가 났다.

나찬의 목검이 허공에서 멈춰 있었다.

하린의 목검이, 그걸 받치고 있었다.

언제 검을 든 거지? 나는 봤는데도 못 봤다. 쇠고랑을 찬 손으로, 앉은 자세에서, 그 애는 일류의 일격을 받아 흘렸다.

전생부터 검을 보아 온 내 눈으로도 잔상만 잡혔다. 몸이 먼저 움직인 거다. 머리가 "맞으면 안 돼"라고 명령하기 전에, 손이 "산다"를 골랐다. 매보다 빠른 생존 본능. 그게 이 애의 진짜 패였다.

받아 흘린 정도가 아니었다.

나찬의 목검이, 쩍, 하고 금이 갔다.

받아치면서 검결(劍訣)로 목검의 결을 읽고 가장 약한 곳을 때린 거다. 절정의 수법. 본인도 모르게 나온.

나찬이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얼굴이 새하얘졌다.

"이, 이게—"

방금까지 세상이 우습던 천재가, 처음으로 위를 본 얼굴이었다. 손 묶인 이류한테, 일류가 한 합에 목검이 갈라졌다. 그 낙차가 그의 오만을 한 번에 무너뜨렸다.

그 순간이었다.

하린의 눈이, 자기 손을 봤다.

자기가 검을 휘둘렀다는 걸, 그 애가 깨달았다.

그러자—

목검이 손에서 떨어졌다. 툭, 하고.

하린이 움찔 몸을 움츠렸다.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매를 기다리는 자세였다. 검을 휘둘렀으니, 이제 맞을 차례라는 듯이.

아무도 안 때렸는데.

마당이 조용해졌다. 바람에 잡초 스치는 소리만 났다.

나찬이 멍하니 하린을 봤다. 방금 자기를 압도한 손이, 지금은 매 맞을까 봐 떨고 있었다. 그 낙차에, 나찬은 깔보던 말을 잊은 것 같았다.

"……뭐야, 쟤."

나찬이 작게 중얼거렸다. 깔보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무서워하는 목소리였다.

봤지. 저게 진짜 패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는 순간. 이게 내가 노린 절반이었다. 나찬은 이제 안다. 제 위에 누가 있다는 걸. 혼자 일등인 줄 알았던 놈이, 머리 위 천장을 본 거다.

나는 천천히 하린에게 다가갔다. 떨어진 목검을 주워, 다시 그 애 앞에 놓았다. 빼앗긴 패를 돌려주듯이.

"하린아."

그 애가 팔 사이로 나를 봤다. 매를 기다리는 짐승의 눈으로.

"네가 방금 한 거, 그거 천재의 검이야. 근데 넌 그걸 하고 나서 매부터 기다리지."

나는 쪼그려 앉았다. 또 눈높이를 맞췄다.

"누가 너한테 그랬어. 휘두르면 맞는다고."

하린의 눈이 붉어졌다. 대답은 없었다. 근데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그 쇠고랑."

나는 그 애 손목의 쇠를 가리켰다.

"내가 풀어 주면, 또 누가 채워. 평생 그래 왔잖아. 풀어 주는 놈이 결국 다시 채우는 놈이었지."

하린의 손이 떨렸다. 정곡이었다.

누가 다정하게 손을 풀어 줄 때마다, 그 손이 다시 채우는 손이었던 거다. 그래서 이 애는 다정을 못 믿는다. 다정이 제일 무서운 함정이었으니까. 그건 나도 안다. 이 바닥에서 제일 비싼 등은, 늘 웃으면서 친다.

"그러니까 네가 끊어 봐. 네 힘으로 끊을 수 있다는 걸 알면, 누가 다시 채우려 해도 맞설 수 있어."

"……못 해."

"할 수 있어. 방금 나찬의 목검도 갈랐잖아. 그 힘은 네 거야."

나는 일어섰다.

"천천히 해. 시간은 줄게. 남의 시간은 훔쳐도, 네 시간은 안 훔쳐."

끗발이가 하린의 무릎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그 애의 쇠고랑 위에 턱을 괴고 "끗", 하고 울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패, 있다니까.

하린이 끗발이를 내려다봤다. 멍투성이 손이, 아주 조금, 망설이다, 그 털을 만졌다. 사흘 만에 처음으로, 세상이 아닌 무언가를 만진 손이었다.

그날 밤.

나는 평상에 누워 별을 봤다. 외상 인생의 첫 며칠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천하제일이던 시절엔 별을 본 적이 없다. 늘 발밑의 시체나, 다음 적의 목만 봤다. 죽었다 살아나서야 별을 본다. 외상으로 빌린 인생이 더 호사스럽다.

나찬이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사부."

"왜."

"……쟤, 나보다 세요?"

낮의 그 한 합이 아직도 머릿속에 박혀 있는 거다. 천재는 진 걸 못 잊는다. 그게 천재의 저주고 동시에 약이다.

"내공은 네가 많지. 그래도 낮에 검을 맞댔을 땐 쟤가 이겼잖아."

나는 하품을 했다.

"근데 그 손 풀리면? 넌 쟤 발끝도 못 따라가."

나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만한 천재가, 처음으로 위를 본 표정.

좋은 표정이다. 천재는 천재를 봐야 큰다. 혼자 일등이면 거기서 썩는다. 회귀 전, 내가 그랬다. 위가 없으니 안 컸고 안 크니 혼자 다 짊어졌고 혼자 짊어지니 다 죽었다.

나찬한테는 위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 판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너도 빨리 커. 안 그럼 막내한테 따이는 첫째 된다."

"……막내요?"

그때였다.

대문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여러 마리. 비단 깃발. 횃불. 밤을 찢는 불빛이 폐가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평온하던 별밤이 한순간에 끝났다.

대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말 위에서 나를 내려다봤다. 며칠 전 하린을 버리고 간, 그 명문가 자제.

그 뒤로 무사가 스물은 됐다. 횃불에 칼날이 번들거렸다.

"이봐, 애송이 관주."

백승호가 비릿하게 웃었다.

"내가 버린 물건이, 무관에서 검을 휘둘렀다며? 천재 소리까지 들었다고?"

소문이 벌써 퍼진 거다. 낮의 그 한 합이, 담을 넘어 성안까지 갔다. 폐품이 명품이었다는 소문은, 발이 빠르다.

그가 채찍을 들어 하린을 가리켰다.

"내 폐품이 명품 행세하는 꼴은 못 보지. 도로 가져간다. 이번엔 다리를 분질러서."

마당 구석에서, 하린이 다시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낮에 끗발이 털을 만지던 그 손이, 다시 매를 기다리는 자세로 돌아갔다. 한 발 나아갔다 다시 한 발 물러선 거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이 판은, 안 풀면 그 한 발마저 영영 잃는다.

딜에 앉힌 천재: 1명 (나찬). 하린 — 쇠고랑 미해제. 새 위기: 학대자 백승호, 무사 20명과 재등장. 검신의 정체: 미발각.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