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은 발이 빠르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발 달린 소문은 그 갑절을 갔다.
흑도 방주를 천재 둘이 세 합에 꺾었다더라. 짐꾼 거리를 화경의 거한이 지켰다더라. 그 모든 게, 솜털 난 애송이 사부 밑에서 보름 만에 벌어진 일이라더라.
저잣거리에서, 객잔에서, 도박판에서, 소문은 살을 붙이며 굴렀다. 어떤 입을 거치면 사부가 백 살 노괴가 됐고 어떤 입을 거치면 제자가 열이 됐다. 사기꾼한텐 익숙한 일이다. 소문은 원래, 진실보다 그럴듯한 쪽으로 부푼다.
도박촌의 소문이, 변방 전체로 번졌다.
나는 그 소문을 굳이 안 막았다. 사기꾼은 소문도 밑천으로 쓴다. 부풀려 둬야, 진짜 패가 모여드니까. 막판무관이라는 간판을, 소문이 알아서 걸어 준 셈이다.
그리고 보름쯤 지나자—
막판무관 폐가 앞에, 줄이 섰다.
아침에 눈을 뜨니 마당 밖에 사람이 늘어서 있었다. 처음엔 빚쟁이인 줄 알았다. 사기꾼한테 새벽부터 줄 서는 건 보통 빚쟁이거든. 근데 아니었다.
"여, 여기가 버려진 천재만 받는다는……"
맨 앞에 선 놈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문전성시였다.
가문에서 쫓겨난 서자. 사문에서 파문당한 제자. 재능이 너무 튀어, 윗사람 눈 밖에 나 짓밟힌 아이들. 손에 검 대신 멍을 든 놈들. 회귀 전 내 뒤에서 죽어 갔을 얼굴들이, 제 발로 찾아왔다.
이름도 불러 주지 못한 채 등 뒤에서 죽어 간 그 얼굴들이, 이번엔 살아서 내 마당에 서 있었다.
나는 평상에 누워 그 줄을 봤다. 팔베개를 하고 한쪽 눈만 뜨고.
"……귀찮게 됐네."
근데 입꼬리가 올라갔다.
회귀 전엔, 이 천재들이 한 명씩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죽었다. 도구로 쓰이다, 꺾이다, 잊혀서. 나는 그걸 천하제일이 되고서도 못 막았다.
이번엔, 내 마당으로 모여든다. 빨려 들어가기 전에. 제 발로.
영약이 흐르는 길의 묘판이, 이번엔 거꾸로 내 쪽으로 흐르는 거다.
물론 다 받진 않는다.
끗발이가 코로 골라냈다. 줄 앞을 한 바퀴 돌며 진짜 패가 있는 놈, 농사꾼들이 탐낼 만한 떡잎만 짚었다. 영약 냄새에 시달리던 녀석이, 오랜만에 신이 났다. 사람 패 고르는 건, 이 녀석 본업이니까.
"끗." 이놈은 패가 있다는 소리다.
"끗." 다음 놈도 합격.
"……끗?" 이놈은 무공 재능이 아니라 그냥 사기꾼이라는 투였다.
— 마지막 놈은 나랑 같은 부류라 정이 가서, 그냥 회계나 보라고 받았다. 무관에 장부 적을 놈 하나는 있어야 하니까. 사기꾼은 사기꾼을 알아본다.
골라낸 떡잎들이 마당으로 들어왔다. 멍든 얼굴에, 처음으로 갈 곳이 생긴 눈들이었다.
그중 한 계집애가 눈에 들어왔다. 한쪽 팔에 부목을 댔는데, 성한 손으로 부러진 목검을 꼭 쥐고 있었다. 가문에서 재능을 시샘한 형제들이 팔을 부러뜨렸다고 했다. 그래도 검을 안 놓았단다.
"……너, 그 팔로 뭐 하려고."
"나으면, 벨 거예요."
눈에 독기가 있었다. 나찬을 처음 주울 때 봤던 그 독기. 분노는 좋은 종잣돈이다. 굴리기 나름이니까.
하린이 그 계집애를 한참 봤다. 인질로 억눌려 살던 시절의 제 얼굴을, 거기서 본 모양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부목을 다시 단단히 묶어 주는 손이 그랬다.
두식은 떡잎들 짐을 말없이 날랐다. 산만 한 거구가 어린것들 봇짐을 하나하나 받아 드는 꼴이, 어딘가 미더웠다. 막내라더니, 제일 큰 막내였다.
나찬이 그 광경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한 달 전만 해도 짐수레에 처박혀 있던 놈이, 이젠 선배 행세를 했다.
"사부, 이러다 무관 아니라 군대 되겠는데요."
"군대 아니야."
나는 줄지어 선 천재들을 봤다. 하나하나, 다른 빛을 가진 눈들을.
"패 무더기지. 한 장 한 장이 다 다른 패야. 이게 다 모이면—"
윗선이 한곳에 모아 '하나'를 만들려는 그 천재들을, 내가 먼저 흩뿌려 키우면.
"저쪽이 만들려는 '단 하나'를 우리가 '여럿'으로 부수는 거야."
판돈을 한 장에 모는 자들에게, 패를 나눠 쥔 자들이 맞서는 거다.
한 장에 다 거는 판은 무너진다. 근데 여럿이 제 패를 쥐면, 한 장이 꺾여도 판은 안 끝난다. 그게 내가 시체의 산 위에서 배운 단 하나의 교훈이고 이번 생에 거는 패다.
"그게 막판무관이야."
나찬이 잠깐 말이 없었다. 무슨 뜻인지, 절반쯤은 알아들은 눈이었다.
"……사부."
"왜."
"그 '여럿' 중에, 저도 끼는 거죠?"
"넌 첫 패잖아. 제일 비싼 패."
나찬이 픽 웃었다. 한 살 어린 사부한테 비싼 패 소리를 듣고 입꼬리를 못 숨겼다. 백 년에 하나 나올 검재가, 칭찬 한마디에 애처럼 굴었다. 능력 곡선은 일류인데, 사람은 아직 열아홉이었다.
천재들로 마당이 북적이던 어느 날.
낯선 전령이 막판무관을 찾아왔다.
말발굽 소리부터 달랐다. 떡잎들이 타고 온 비루먹은 노새가 아니라, 윤기 흐르는 준마였다. 전령의 옷도 폐가 마당엔 어울리지 않게 빳빳했다.
그가 내민 건, 비단에 싼 초청장이었다.
폐가에는 어울리지 않는, 금박 두른 봉투. 흙바닥에 놓으니 그 부조화가 더 도드라졌다.
겉면에 찍힌 인장을 보고 마당이 술렁였다.
무림맹(武林盟).
"무, 무림맹에서 왜 우리한테……"
나찬조차 긴장했다.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천하 정파의 본산. 명문 중의 명문이 모이는 곳. 변방 도박촌에서 자란 놈한텐, 이름만으로도 산처럼 무거운 곳이다.
떡잎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는 겁먹었고 누군가는 눈을 빛냈다. 거지 무관에 무림맹의 금박 봉투라니. 어울리지 않아서 더 무서운 그림이었다.
나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종이 한 장 무게에, 호랑이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초청장을 폈다.
후기지수 비무대회(後起之秀 比武大會)에, 막판무관을 초청한다. 천하의 떡잎들이 모여 기량을 겨루는 자리. 막판무관의 어린 영재들의 참가를 환영하노라.
겉으로는, 영광스러운 초대였다.
변방 폐가 무관을, 천하의 무림맹이 알아봐 준 셈이니. 떡잎들 사이에서 기대 섞인 숨소리가 새 나왔다. 거지 취급 받던 자기들이, 천하의 무대에 초대받았다는.
하지만 나는 웃었다.
천수의 웃음. 호구가 패를 좋게 깔아 줄 때 짓는, 그 웃음.
"비무대회라."
비무대회가 뭔지, 나는 안다.
그건 천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자리다. 천하의 떡잎이 제 발로 모여, 기량을 뽐내는 자리. 가장 좋은 패들이 한 무대에 줄지어 서는 자리.
농사꾼이 보기엔—
수확하기 가장 좋은 밭이다.
씨 뿌리고 거름 줘서 다 익힌 천재들이, 제 발로 한자리에 모인다. 낫 들고 돌아다닐 필요도 없다. 그냥 밭 한가운데 서서, 베면 된다.
"끗발아."
나는 초청장 봉인의 밀랍을, 끗발이 코앞에 댔다.
녀석이 냄새를 맡더니, 단번에 털을 곤두세웠다. 등을 활처럼 휘고 이를 드러냈다.
"……끗. 끗!"
영약에서 났던, 그 냄새.
혈겁의 그날, 적의 몸에서 나던 그 역한 냄새. 무림맹의 금박 초청장 밀랍에, 아주 옅게 — 그 문양 세력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천하 정파의 본산에서 온 초청장에서, 혈겁의 냄새가 났다.
"역시. 미끼네."
이 초청은 무림맹이 보낸 게 아니다.
아니, 무림맹 이름으로 왔지만 그 뒤에 농사꾼들이 있다. 보름 만에 천재 셋을 키워 낸 막판무관을, 그 비정상적인 묘판을 — 통째로 수확하려고. 영약 한 톨 안 먹이고 천재를 익히는 묘판이, 농사꾼들 눈엔 얼마나 탐났을까.
밭에 안 들어오면, 밭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그게 이 초청장의 정체다.
나를 호랑이 굴로 부르는 거다.
"미끼면, 안 가면 되잖아요."
나찬이 인상을 썼다.
"미끼인 줄 모르고 물면 호구고, 미끼인 줄 알고 무는 건 사기꾼이야."
나는 초청장을 흔들었다.
"낚싯바늘째 삼켜서, 낚싯대 든 놈을 물 밖으로 끌어내는 거지. 누가 누굴 낚는 건지, 가 봐야 알 거 아냐."
끗발이가 내 어깨 위에서, 무림맹 방향을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그 작은 몸이, 종착지가 그 너머에 있다는 걸 아는 듯이.
막판무관, 도박촌의 명물이 되어 버려진 천재들이 제 발로 모여듦. 무림맹 후기지수 비무대회 초청장 도착 — 밀랍에 그 문양 세력의 냄새. 초청은 미끼다. 천재를 수확하려는 자들의. 딜에 앉힌 천재: 3명(나찬·하린·두식). 혈겁까지: 약 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