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도의 이름은 독사방(毒蛇幇)이었다.
도박촌은 원래 임자 없는 땅이다. 정파도 사파도 더럽다고 안 먹던 동네. 천한 노름꾼과 버려진 것들이 모여 사는, 무림의 시궁창. 그걸 독사방이 통째로 삼키려고 들어왔다.
노름판마다 보호비를 매기고 안 내면 손모가지를 잘랐다. 며칠 새 골목마다 잘린 손가락 소문이 돌았다. 시궁창에도 임자가 생기는 거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막판무관 앞에 섰다.
방주 사갈(沙蝎)이 직접 왔다. 독을 바른 채찍을 든, 절정의 고수. 뒤에 수하가 쉰은 됐다. 마당 좁은 폐가 앞이 시커먼 무리로 들어찼다.
"애송이 관주."
사갈이 혀를 날름거렸다. 정말 뱀처럼, 갈라진 혀끝이 입술을 핥았다.
"이 동네는 이제 독사방 거다. 무관 보호비, 한 달에 은자 백 냥. 천재 둘 키운다며? 천재값까지 쳐서 이백 냥."
"비싸네."
내가 평상에 앉은 채로 말했다. 일어서지도 않았다. 일어서면 겁먹은 걸로 보인다.
"안 내면?"
"안 내면."
사갈이 채찍을 휘둘렀다.
쐐액. 채찍이 닿는 순간 나는 남은 판자 끝으로 엉덩이를 미끄러뜨렸다. 방금 앉아 있던 평상 한가운데가 두 동강 났다. 독이 묻은 자리가 시커멓게 녹아내렸다. 나무가 산(酸)에 닿은 것처럼 부글거렸다. 그 독이 사람 살에 닿으면 어찌 될지는, 보지 않아도 알았다.
"천재 둘 손모가지부터 자른다. 그담에 네 모가지."
나찬과 하린이 동시에 검을 잡았다. 두 자루의 검이 반쯤 뽑혔다.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잠깐."
여기서 내가 나서면 안 된다.
이건 첫 공개 무대다. 도박촌이 다 보고 있다. 창문마다, 골목마다, 숨죽인 눈이 매달려 있었다. 막판무관이 어떤 곳인지, 처음으로 세상에 보여 주는 판.
소문은 내가 만드는 게 아니다. 저 눈들이 만든다.
그리고 무대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나찬. 하린."
나는 둘을 봤다.
"전에 말했지. 따로 놀면 한 푼도 못 가져간다고. 둘이 호흡 맞춰야 먹는 판이라고."
밥상을 두 쪽 내고 서로 폐품이라 으르렁대던 둘이었다. 그 둘에게 이제 등을 맞대라고 한다.
"……이게 그 판이에요?"
나찬이 물었다.
"그래. 노름판에서 호흡 맞추는 건 뒤로 미루자. 오늘은 너희가 힘을 합쳐 저놈들을 막아."
내가 일어섰다. 부서진 평상을 밟고.
"독사방 쉰 명. 너희 둘이 먹어."
나찬이 헛웃음을 쳤다.
"둘이서 쉰을요?"
"못 해?"
나찬이 입을 다물었다. 못 한다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한다고 하기엔 쉰이 너무 많았다. 그 사이에서 잠깐 흔들리던 눈이—
"……아니."
곧게 섰다.
나찬이 검을 뽑았다. 영약 육십 년이 익어 든, 진짜 일류의 검이.
"폐품이 발 안 맞추면 어려운데."
"한 번만 더 폐품이라고 해."
하린도 검을 뽑았다. 한때 손이 묶여 있던 그 손으로.
"……대신, 네 등은 내가 맡을게. 발 맞춰, 첫째."
나찬이 흠칫했다.
하린이 처음으로 그를 "첫째"라 불렀다. 폐품이라 불리던 애가, 자기를 폐품이라 부르던 놈을 형으로 세웠다. 등을 맡기겠다고 했다. 평생 누구도 못 믿던 애가.
판을 짜 줬다.
나는 검을 안 뽑는다. 대신, 패를 읽어 길을 깐다. 검신의 칼이 아니라, 사기꾼의 눈으로.
"사갈은 채찍이야. 거리가 생명이지. 안으로 파고들면 채찍은 못 써. 하린, 정면에서 시선 끌어. 나찬, 그 틈에 파고들어."
[패안(牌眼)] 패주: 사갈 · 독사방주 · 절정 보이는 패: 독 채찍, 긴 거리 약점: 품 안으로 들어오면 못 쓴다. 독에 자만해 근접전을 안 익힘. 길: 하린(시선) → 나찬(파고듦) → 둘이 동시에
독에 기댄 자는, 독이 안 닿는 거리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 평생 멀리서 채찍만 휘둘렀으니, 품 안은 텅 빈 빈틈이다. 호구의 빈틈은 늘, 자기가 제일 자신 있는 곳 바로 옆에 있다.
하린이 먼저 튀어 나갔다.
사갈의 채찍이 하린의 정면으로 뻗었다. 하린은 검을 비스듬히 세워 그 선을 받았다. 쩌엉. 검에 걸린 채찍이 옆으로 휘며 마당 흙을 쓸었다. 사갈의 팔이 하린 쪽으로 뻗은 사이—
나찬이 땅을 박찼다.
영약 육십 년이 익은 일류의 보법. 나찬은 휘어진 채찍 안쪽으로 들어가 사갈의 옆구리를 스치듯 돌았다. 사갈이 돌려 휘두르려던 채찍은 아직 하린의 검에 걸려 있었다. 채찍 끝을 회수하기 전에 나찬이 그의 등 뒤에 붙었다.
사갈의 눈이 커졌다.
평생 멀리서 사람을 녹이던 자의 눈에, 처음으로 당황이 비쳤다.
"이, 이 새끼들—!"
늦었다.
하린이 채찍 감긴 검을 바깥으로 틀어 붙잡았다. 사갈의 팔이 펴지고, 나찬의 검이 드러난 명문혈을 두드렸다.
둘의 검이, 한 사람의 검처럼 움직였다.
밥상머리에서 그렇게 으르렁대던 둘이, 칼을 맞댄 순간엔 한 몸이었다. 하린이 비우는 자리에 나찬이 들어가고 나찬이 미는 만큼 하린이 받쳤다. 누가 가르쳐 짠 합이 아니다. 서로를 살리려고 며칠을 굶고 싸운 합이다.
사갈이 무릎을 꿇었다.
절정의 흑도 방주가, 일류와 절정 둘에게, 단 세 합에.
수하 쉰 명이 얼어붙었다. 칼을 뽑은 채로, 한 발도 못 떼고.
도박촌 사람들이 창문마다 매달려 그 광경을 봤다. 폐품이라던 계집애와, 졸부집 도구라던 놈이, 흑도 방주를 찍어 눌렀다.
수군거림이 번졌다. 처음엔 속삭임이었다가, 곧 마른 들불처럼 골목을 탔다.
"막판무관…… 막판무관이래."
"버려진 천재만 받는다는……"
"저 계집애, 백검문이 버린 폐품이라며……"
소문은 이렇게 난다.
오늘 본 놈들이 제 입으로 떠들 테다. 소문값은 한 푼도 안 들었다.
나찬과 하린이 어깨로 숨을 쉬며 서로를 봤다. 처음으로, 등을 맡긴 둘이었다.
"……발, 잘 맞네."
나찬이 인정했다. 폐품이란 말 대신.
"너도."
하린이 픽 웃었다.
딜에 앉힌 천재 둘이, 처음으로 한 패가 됐다.
검 한 번 안 뽑은 건 나뿐이다. 봉인은 그대로 잠겨 있었다. 검신은 코빼기도 안 비쳤다. 그런데 흑도 방주 하나가 마당에 무릎을 꿇었다.
남는 장사다.
"잠깐."
무릎 꿇은 사갈이, 피를 뱉으며 웃었다.
그 웃음이 거슬렸다. 진 자의 웃음이 아니었다. 더 큰 패를 쥔 자의 웃음이었다.
"……너희, 큰일 났다."
"뭐가."
내가 다가갔다. 끗발이가 내 어깨 위에서 털을 곤두세웠다.
"내가 이 동네 들어온 거, 내 뜻인 줄 알아? 윗선이 시켰다. 이 도박촌에서 '될 놈'들을 싹 쓸어 모으라고. 천재 떡잎들을. 영약 먹여서, 어디론가 보내라고."
내 등줄기가 식었다.
도박촌. 임자 없는 시궁창. 천재가 유독 자주 버려지던 동네. 나찬이 굴러나온 곳도, 하린이 처박혀 있던 곳도, 여기였다.
"이 동네에 천재가 왜 자꾸 버려지는 줄 알아? 누가 일부러 '키웠다 버리게' 만드는 거야. 줍기 좋게. 그리고—"
사갈이 나찬과 하린을 가리켰다. 피 묻은 손가락으로.
"그 명단에, 네 제자 둘도 있어. 막판무관도. 윗선은 이미 너희를 점찍었다고."
나찬과 하린의 얼굴이 굳었다.
자기들이 우연히 버려진 줄 알았던 둘이, 누군가의 장부에 진작 이름이 올라 있었다는 걸 안 거다.
"묻고, 더블로 간다."
나는 사갈 앞에 쪼그려 앉았다. 눈높이를 맞췄다.
"윗선이 누군지 불어. 그럼 네 목숨은 살려 주지. 안 불면 — 너, 실패한 회수자로 윗선한테 돌아가야 할 텐데. 회수자가 회수당하는 거, 어떤 기분일까?"
사갈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방금까지 웃던 자의 핏기가, 한순간에 다 빠졌다. 나한테 진 건 안 무서워도, 윗선한테 돌아가는 건 무서운 거다.
그 공포는, 전에 묵단에게서 본 것과 똑같았다. 나가의 노집사 곽종에게서 본 것과도. 추출당에서 '윗선' 소리에 얼굴이 새파래지던 나백천에게서도.
같은 윗선이다.
졸부 가문도, 흑도 방주도, 다 똑같은 손 하나를 무서워한다. 영약으로 천재를 키워 버리게 하고 줍고 어디론가 보내는 자들. 회귀 전, 혈겁의 첫날에 봤던 그 문양.
도박촌의 버려진 천재들도, 나찬의 영약도, 하린이 버려진 것도 —
전부 한 손에서 나온 판이었다.
누군가, 천하의 천재를 한곳에 그러모으고 있었다.
단 하나의, 무언가를 만들려고.
소름이 등을 타고 올라왔다. 회귀 전 시체 산 위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소름이.
"……사부."
나찬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우리, 어디 큰 거에 걸린 거예요?"
나는 일어서며 도박촌 너머 어둠을 봤다. 깃발이 올랐던 그 자리, 그 너머의 어둠을.
"걸린 게 맞아. 저놈들이 처음부터 너희를 노리고 판을 깐 거야."
저들이, 판을 깔아 둔 거다. 이십 년 전부터. 천재를 미끼로 뿌리고 익기를 기다려, 줍는 판. 회귀 전엔 그 판이 다 익어 혈겁이 됐다.
이번엔 다르다.
"근데 너희를 저놈들 손에 넘길 생각은 없어. 이제부턴 내가 판을 뒤집는다."
저들이 깐 판에, 이번엔 내가 앉았다. 패를 읽는 눈을 가진 딜러가.
딜에 앉힌 천재: 2명 (나찬·하린) — 첫 합동 실전 승리. 인격 곡선 동반 상승. 막판무관, 도박촌에 이름을 알림(첫 공개 무대). 새 미결산: '윗선'이 천재를 그러모은다 — 명단에 막판무관도 있다(문양 세력). 검신의 정체: 미발각. 혈겁까지: 약 20년.